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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삼거리 능소와 능수버들 이야기

2026년 2월 11일

천안 삼거리 능소와 능수버들 이야기

천안 삼거리 능소와 능수버들 이야기 전쟁과 기다림, 그리고 돌아온 사람 조선 선조 때, 기축옥사에 연루된 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유봉서. 정쟁을 피해 그는 어린 딸 능소만 데리고 천안 광덕산으로 몸을 숨깁니다. 그러나 곧 임진왜란이 터지며 세상은 더욱 혼란에 빠집니다.

버들가지를 심으며 남긴 약속

유봉서는 삼거리로 내려와 지팡이로 쓰던 버들가지를 땅에 꽂으며 말합니다.
이 나무가 무성해지면 돌아오마. 그때까지 잘 버텨다오.
며칠 묵은 주막의 과부에게 일곱 살 능소를 맡기고 그는 떠납니다. 능소에게 남은 것은 아버지의 말과 어린 버드나무 한 그루뿐이었습니다.

주막에서 자라난 소녀

능소는 총명하고 기품 있게 자라납니다. 낮에는 주모 일을 도왔고, 밤에는 아버지에게 배운 글을 읽었습니다. 그 덕에 능소가 있는 주막은 천안의 명소가 됩니다. 사람들은 맛도, 정성도, 그리고 글 읽는 소녀의 기품도 기억했습니다.

피투성이 선비와의 인연

어느 초겨울 밤, 피투성이가 된 한 선비가 쓰러져 들어옵니다. 전라도 고부 출신 박현수. 과거를 보러 가던 길에 도적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능소는 정성껏 그를 간호합니다. 상처를 씻기고, 약을 달이고, 밤을 새워 곁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기다림의 시간

이듬해 박현수는 과거를 보기 위해 떠났지만 낙방합니다. 부끄러움에 돌아오지 못한 채 암자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합니다. 능소는 아버지와 박현수를 기다리며 삼거리 뒤편 조용한 집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버드나무를 심습니다.
저 나무가 자라면 낭군도 돌아오시겠지…
북쪽을 바라보며 물을 주는 일이 그녀의 하루가 됩니다.

시로 맺은 장원급제

몇 해 뒤, 박현수는 다시 과거에 응시합니다. 능소와의 사연을 담은 시를 지어 올렸고 마침내 장원에 오릅니다. 임금은 그 재주와 정성에 감탄하며 그를 충청우도 암행어사로 임명합니다.

암행어사 출두요!

어느 날, 초라한 행색의 사내가 주막에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수군댑니다.
박현수 아닙니까?
그 시각, 능소는 버드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 오실까… 낭군은…
웅성거림에 고개를 돌리자, 그가 서 있었습니다. 능소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씻기고 정갈한 옷을 입힙니다.
차마 이 꼴로 올 수가 없었소.
그의 말에 능소는 웃으며 답합니다.
과거가 뭐 그리 대수라고요. 그냥 바로 오시지.
그때 울려 퍼지는 외침.
암행어사 출두요!
박현수는 능소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내가 바로 암행어사요. 고생 많으셨소.
그 자리에서 혼례가 치러지고 마을에는 흥타령이 울려 퍼집니다.
천안 삼거리 흥흥~ 능소의 버들은 제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능수버들이 된 기다림

능소가 심은 버드나무는 훗날 ‘능수버들’이라 불리게 됩니다. 기다림과 약속, 그리고 사랑의 상징처럼 지금도 천안 삼거리에는 버들이 흐드러지게 늘어섰다고 전합니다. 아버지를 기다린 마음, 낭군을 기다린 시간. 그 모든 세월이 가지를 늘어뜨린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1. 나만의 국가유산 해설사 - 천안 삼거리 2. 나무위키 -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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