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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할아버지의 육아일기

2026년 2월 12일

500년 전, 할아버지의 육아일기

500년 전, 할아버지의 육아일기 《양아록》에 담긴 눈물의 기록
기록할 일은 아니지만, 할 일이 없어 썼다.
이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이 있습니다. 노년에 귀양살이를 하며 벗도 없고, 생업도 없고, 아내마저 떠난 삶. 그의 하루를 채운 것은 오직 손자였습니다. 조선 선비 **이문건**의 손자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 이야기입니다.

명문가 선비의 추락

이문건은 정승을 여럿 배출한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광조의 제자였던 그는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게 됩니다. 한순간에 무너진 가문. 쇠락한 집안의 마지막 희망은 어린 손자 한 명이었습니다.

태봉에 묻은 탯줄

그는 손자의 탯줄을 조선 왕자들의 태를 묻던 ‘태봉’에 몰래 묻습니다. 발각되면 유배형을 피하기 어려운 일. 그러나 그는 그 금단의 땅에 손자의 이름과 미래를 걸었습니다. 한 아이의 앞날을 위해 모든 것을 건 할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아픈 손자를 지키는 밤

《양아록》 39편 가운데 절반은 손자의 병에 관한 기록입니다. 손자 수봉은 잦은 병치레를 했습니다.
열이 불덩이 같고, 눕혀도 안아도 고통스러워한다.
이틀 밤낮 미음을 먹이고 죽을 쑤어 먹이고 배설을 받아내며 곁을 지켰습니다.
밖에 나가면 잠도 안 자고 기다리고, 들어오면 문 앞에서 펄쩍펄쩍 뛰며 반긴다.
기록 속에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애틋한 정이 묻어납니다.

사랑과 엄격함 사이

세월이 흘러 수봉이 열한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술을 탐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조선에서 열한 살은 이미 어른 대접을 받던 나이였습니다. 이문건은 손자가 자신의 품을 떠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술 취해 구토하여 밥을 못 먹은 일이 잦다. 풀이 시들고 꽃이 마르는 듯 처참하다.
실망과 걱정 속에서 그는 눈물로 기록을 남깁니다. 새해 첫날, 떨리는 손으로 적습니다.
손자가 번번이 술에 취해 토하고도 뉘우치지 않는다. 운수가 사납고 운명이 박하니 이 한을 어찌 감당하랴.
그리고 한 번은 회초리를 듭니다.
대살가지로 등과 궁둥이를 때렸더니 숨을 쉬지 못해 그만두었다.
늙은이의 포악함은 경계해야 하나… 나는 실망했고, 손자도 나를 떠났다.
아…, 눈물이 흐른다.
그 문장을 끝으로 《양아록》은 더 이어지지 않습니다.

한 남자의 기록, 한 할아버지의 사랑

《양아록》은 단순한 육아일기가 아닙니다. 가문의 몰락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기록. 사랑이기에 엄격했고, 엄격했기에 더 아팠던 마음. 조선 선비에게 가족을 돌보고 아이를 기르는 일은 자연스럽고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을 강조하지만 그 사랑 안에 담긴 책임과 엄격함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500년 전 한 할아버지의 눈물은 지금도 조용히 묻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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