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11일
세종이 가장 사랑한 아들은 누구였을까
세종이 가장 사랑한 아들은 누구였을까
막둥이 영응대군 이야기
조선 제4대 임금 세종.
수많은 업적으로 기억되는 성군이지만,
그에게도 유독 마음이 더 기울었던 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막내, 영응대군입니다.
환갑둥이 막내의 탄생
1434년. 세종 38세, 소헌왕후 40세. 그해 기적처럼 태어난 아들이 바로 영응대군이었습니다. 이미 자녀가 스무 명이 넘던 시기. 늦둥이로 태어난 이 아이는 그야말로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정실왕자 여덟 명 가운데서도 수려한 용모와 총명함으로 두각을 보였다고 전합니다. 실록에는 세종이 이 아들을 유독 아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형제들의 질투 대신 애정
막내가 유난히 사랑받았다면 형제들의 시기와 갈등이 따랐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영응대군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첫째 형 문종과는 스무 살 차이, 둘째 형 세조와도 17살 차이였습니다. 이미 장성한 형들에게 막내는 경쟁자가 아니라 보호해야 할 어린 동생이었습니다. 영응대군의 신도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합니다. 다른 왕자들은 예법에 따라 세종을 ‘진상’이라 불렀지만, 막내에게만큼은 장성할 때까지 ‘아버지’라 부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종에게 영응대군은 군신 관계 이전의, 온전한 아들이었습니다.막둥이를 위한 선물과 배려
1442년, 영응대군의 아홉 번째 생일. 세종은 하늘다람쥐와 독수리 새끼를 선물했습니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진귀한 동물들을 내려주었습니다. 사냥에 나가면 항상 지친 짐승을 막내 앞으로 몰아 그가 활을 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늘 막내를 향해 있었습니다.혼인과 저택, 그리고 끝까지 이어진 보호
1445년, 세종은 영응대군의 혼처를 직접 살폈습니다. 여러 후보 중 송씨를 택하고, 안국동에 큰 저택을 지어 분가시켰습니다. 신하들 사이에서지나치게 호화롭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후 송씨가 병약해 아이를 낳지 못하자 혼인을 정리하고 다시 짝을 맺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은 생의 마지막 무렵, 거처를 영응대군의 집으로 옮깁니다. 말년을 가장 사랑한 막내의 집에서 보내고, 그곳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세종 이후에도 이어진 형들의 사랑
세종이 승하한 뒤에도 영응대군은 형들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문종은 궁중의 귀한 물품들을 내려주며아버지의 뜻을 잇겠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왕권을 위해 피를 흘렸던 세조조차 막내동생에게만큼은 각별했습니다. 첫사랑 송씨와 다시 만나도록 돕고, 즉위 후에는 공식 재혼까지 성사시켰습니다. 영응대군이 서른네 살에 세상을 떠났을 때, 세조는 크게 슬퍼하며 정사를 돌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아버지의 사랑, 형들의 보호 속에
왕권을 둘러싼 격랑 속에서도 끝까지 형들의 애정을 받았던 왕자. 아버지 세종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형들에게도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존재. 막둥이 영응대군. 조선 왕실의 치열한 역사 속에서 그의 이름은 유난히 부드러운 온기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 문헌 1. 조선왕조실록 2. 중앙일보 - 세종의 귀염둥이 막내아들, 왕실판 ‘사랑과 전쟁’ 3. 세종대왕신문 - 세종대왕이 가장 사랑한 아들 영응대군, 조선의 왕자녀 273명 중 가장 행복한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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