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12일
남장을 하고 조선을 유람한 소녀
남장을 하고 조선을 유람한 소녀
14살 김금원의 도전
1817년, 조선 후기.
강원도 원주의 한 몰락한 양반가에서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름은 김금원.
아버지는 양반이었지만
어머니는 기생 출신이었습니다.
정해진 운명, 그러나 다른 꿈
아버지는 어린 딸의 총명함과 빼어난 외모를 알아보고 가사 대신 글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신분 질서는 냉정했습니다.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법. 김금원 역시 결국 기생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합니다.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금수가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난 것은 불행이다.타고난 재능과 감성을 집 안에 가둔 채 운명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팔도를 보고 싶습니다
김금원은 부모를 설득합니다.머리를 올리기 전에 팔도를 유람하며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당시 조선은 철저한 유교 질서 사회였습니다. 여성의 자유로운 외출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는 다가올 딸의 운명을 안타깝게 여겨 마침내 허락합니다.
남장을 한 14살 소녀
1830년, 춘삼월. 열네 살 김금원은 머리를 동자처럼 땋고 남장을 한 채 길을 떠납니다. 처음 향한 곳은 제천의 의림지와 단양팔경. 책과 그림으로만 보던 풍경을 직접 마주한 순간, 그녀는 시로 감동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금강산으로 향합니다. 일만이천봉의 장엄한 산세 앞에서 넋을 잃고 자연의 위엄을 가슴에 새깁니다. 관동팔경을 두루 돌아 마침내 한양에 도착합니다. 조선의 중심을 눈으로 보고, 직접 걸으며 세상을 담아냅니다.기생이 되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금원은 결국 시대의 틀을 거스를 수 없어 기생이 됩니다. 그러나 여행은 단순한 추억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금강산에서 느낀 감동을 담은 그녀의 시는 한양 사대부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됩니다.여인의 시에서 금강산이 새롭게 태어났다.그녀의 글은 여성의 감성을 넘어 인간의 사유와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삼청동, 삼호정시사
그녀의 시에 감동한 사대부 김덕희가 그녀를 소실로 맞이합니다. 서울 삼청동의 삼호정. 이곳에서 김금원은 재능과 감성을 지닌 여성들과 함께 조선 최초의 여류 시단, ‘삼호정시사’를 결성합니다. 남성 문인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문단의 중심으로 나아갑니다. 당대 최고 지성 김정희는 그녀를 이렇게 평했습니다.마음은 비단같이 곱고 부드럽지만 그 속에는 거대한 바다와 웅장한 산이 있다.
200년을 건너온 목소리
김금원은 시대를 거슬러 남장을 하고 길을 나섰던 소녀였습니다.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언어로 기록하려 했던 사람. 그녀의 시선과 정신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묻고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고. 세상은 넓고, 걸음을 떼는 순간 길은 열린다고. 14살 소녀의 용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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