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11일
세종도 경악한 악마 부부
1427년, 세종 9년.
조선의 형조판서였던 노한은 길을 가다 이상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한 노복이 지게에 사람을 짊어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미 숨이 끊어진 듯한 여인이었습니다.
길에서 멈춰 선 지게
노한이 다가가 묻습니다.어디로 가는 길이냐?노복은 두려운 기색으로 답합니다.
집현전 응교 권채의 가노 덕금이라 합니다…노한은 즉시 관원을 보내 사건을 조사하게 했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질투와 분노가 만든 지옥
권채는 여종 덕금을 첩으로 삼아 가까이 두었습니다. 이를 질투한 부인 정씨는 덕금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덕금의 할머니가 임종을 앞두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덕금은 잠시 다녀오게 해달라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합니다. 결국 몰래 집을 나섰고, 정씨는 이를 빌미로 권채에게 거짓말을 합니다.사내와 간통하여 도망갔습니다.분노한 권채는 덕금을 잡아오라 명합니다. 덕금은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도 못한 채 끌려왔고, 머리카락이 잘리고 매질을 당했으며 쇠고랑이 채워진 채 광에 갇혔습니다. 이후 이어진 고문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굶주림, 모욕, 오물 강요, 구타. 수개월간 이어진 학대 끝에 덕금은 거의 숨이 끊어진 상태가 됩니다. 정씨는 그를 묻어버리라 명했고, 노복이 지게에 싣고 나선 순간 노한이 이를 목격한 것입니다.
세종의 분노
보고를 받은 세종은 크게 분노합니다.나는 권채를 성품이 온화한 사람으로 여겼다. 어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 끝까지 조사하라.의금부가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권채는 끝까지 부인합니다.
나는 몰랐다. 모두 아내가 한 일이다.덕금과 정씨, 권채의 진술은 엇갈렸고 대질이 필요했습니다.
법과 맞선 임금의 판단
문제는 법이었습니다. ‘수령고소 금지법’에 따라 노비는 주인을 고발할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사건은 묻힐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법을 새롭게 해석합니다.이 일은 노비가 주인을 고소한 것이 아니다. 형조판서가 나라의 이름으로 조사한 것이다.왕의 판단으로 조사는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권채가 학대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의금부는 권채를 파직하고 유배형에 처하며 부인 정씨는 곤장 90대에 처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조정의 반발, 그리고 단호함
그러자 대신들이 나섭니다.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노비의 관계는 같사옵니다. 노비 문제로 사대부를 파직한다면 세상의 질서가 흔들릴까 두렵습니다.왕조 사회의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잔인함이 이 지경이니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노비도 사람이다. 천민 또한 하늘이 낸 백성이다.결국 세종은 총애하던 권채를 파면시킵니다.
기록으로 남은 메시지
이 사건은 『세종실록』에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이 신하를 감싸지 않고 법을 다시 해석하며 사람의 존엄을 앞세운 장면. 완전한 평등의 시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신분을 넘어선 인간의 가치가 선언되었습니다. 권채와 정씨의 잔혹한 악행은 기록으로 남아 후대에 전해졌고, 세종의 판단 또한 역사 속에 또 하나의 기준으로 남았습니다. *참고문헌 1. 조선왕조실록 - 세종실록 2. 파이낸셜뉴스 - [한동하의 본초여담] 세종은 잔인한 죄를 도모한 OO에게 '향약집성방'의 서문을 맡겼다 3. 조선일보 - 노비를 죽이고도 처벌받지 않은 조선의 노주들...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4. 경향신문 - 노비, 재소자, 장애인…세종의 '혁명적인' 인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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